티스토리 뷰

반응형

[용인 가볼 만한 곳] 고려의 마지막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 묘>를 찾다.

안녕하세요~ 단비에요^^ 고려 말 충신이며 동박 이학의 시조로 추앙되던 포은 정몽주 (1337~1392) 선생의 묘를 찾았습니다. 충절의 상징이었던 정몽주 선생의 묘가 선죽교가 있는 개성에 있는 줄 알았는데 바로 이곳 용인에 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정몽주 선생은 이방원 세력에 의해 선죽교에서 철퇴로 피살된 후 반역이라는 죄명으로 시신이 아무렇게나 버려졌는데 이를 본 송악산 스님들이 몰래 시신을 수습하여 개성 근교의 경기도 풍덕군에 추장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몇 년 후 왕이 된 이방원은 왕권 강화와 민심 수습 방안으로 정몽주의 신원을 복원하여 영의정에 추증하고 묘를 고향으로 이장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고향인 영천으로 이장을 하던 중 이곳 용인군 수지면 경계에 이르자 앞에 세웠던 명정이 바람에 날아가 이곳 현 묘소 위치에 떨어졌습니다. 일행들이 그곳을 살피니 보기 드문 명당자리였고, 하늘이 충신을 알아보고 자리를 잡아둔다고 생각하여 영천을 가지 않고 이곳에다 안장했다고 합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정몽주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출발해 봅니다.


포은 정몽주 선생 묘역 안내도가 보입니다.


들어서자마자 우측으로는 연안이씨 비각 공원이 있습니다.


정몽주 선생의 묘를 들어서는 입구에는 신성시되는 장소를 보호하는 의미를 지닌 홍살문이 있습니다. 이 홍살문은 궁전이나 관아, 능, 묘, 원 등의 앞에 세우는 붉은색을 칠한 나무 문입니다. 입구에는 홍살문만 있을 뿐 다른 유적지와는 달리 관리인도 입장료, 주차료도 없습니다.


홍살문은 지나면 좌측으로 경모사, 모현당, 영모재인 한옥 3채가 보입니다. 

경모사는 현재 정몽주 선생 묘를 관리하는 곳이고 관리인이 거주한다고 합니다.

모현당은 각종 제례행사나 종중화의를 하던 곳입니다.

영모재는 제향을 위해 지었으며, 포은 선생이 직접 쓴 행서편판이 걸려 있습니다.


해설 예약을 하면 무료로 해설도 해 주신다고 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조금 더 가면 정몽주 선생의 단심가와 정몽주 선생의 어머니가 쓴 백로가가 비석에 적혀 있습니다.


조선 태종(太宗)이 된 이방원(李芳遠)이 포은의 뜻을 떠보려고 읊은 '하여가(何如歌)에 답하여 불렀다는 '단심가'

이방원의  <하여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긔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까지 누리리가


세상의 어지러움 속에서도 절개를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어머니가 쓴 '백로가'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충절의 모습은 연상시키는 소나무가 연못 근처와 묘를 둘러싼 곳곳에 심어져 있습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를 올라 봅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에는 장명등, 상석, 혼유석, 망주석, 문인석, 석양, 석호가, 난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포은 정몽주 선생 묘 맨 앞 정중앙에 보이는 '장명등' 이것은 분묘 앞에 불을 밝힐 수 있도록 돌로 만들어 세운 것입니다. 묘 앞에 세워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인인 경주 이씨와 합장되어 있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소, '장명등' 뒤로 보이는 2개의 혼유석이 합장릉임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좌, 우 양쪽으로 세워져 있는 문인석! 포은 정몽주 선생이 문인이어서 문인석만 세워져 있습니다.


묘 앞에 세워져 있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비문! 고려를 지키려 한 충신인 그의 비문은 조선시대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고려수문하시중정몽주지묘(高麗守門下侍中鄭夢周之墓)'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역 좌우에는 영일정씨와 연안이씨 일가의 묘역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현재 보이는 사진의 묘는 바로 정몽주 선생의 증손녀 남편 이석형의 묘입니다. 아담하고 소담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경기도 지방문화재 17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가문이 다른 정몽주, 이석형의 묘가 나란히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이석형(1415~1477)은 연안이씨로 조선조 때 명재상이었습니다. 세조의 총애를 입어 한성부판윤에 7년간 봉직했고, 그의 현손 이정구와 이명한, 이일상 3대가 대제학을 지내 이곳이 천하 길지로 알려졌습니다. 조선 역사상 3대가 대제학을 배출한 집안은 광산김씨(김만기, 김진규, 김양택)와 연안이씨 뿐이라고 합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탁 트인 정경이 무척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쉼이 필요할 때 가끔씩 찾아서 쉬었다 가야겠습니다. 좌측으로는 우리나라 묘역에서는 보기 힘든 연못이 보입니다. 음양의 이치에 따라 가운데 섬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유료 입장이 아님에도 잘 관리되어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정치가와 외교관 그리고 학문으로 많은 업적을 남기신 정몽주 선생! 이 가을이 가기 전 가족과 함께 조용히 정몽주 선생의 업적을 되새기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니 한 번쯤 들러 보시실 권합니다.

충신 불사이군(忠臣 不事二君) : 충성스러운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정보가 도움이 되셨다면

로그인하지 않아도 누룰 수 있는

[ 공감] 버튼을 꾹 눌러 주세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반응형
댓글
공지사항